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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 온가족예배 [자족의 비결]
한광수 담임목사 2020-10-04 추천 0 댓글 0 조회 615
[성경본문] 빌립보서4:10-13 개역개정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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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13 “자족의 비결_약할 때 강함주시네!" 2020104일

 

오늘 읽은 본문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대부분 13절의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능력을 주시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으면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여 높은 빌딩에 올라가 뛰어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물 위를 걸으려고 바다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야 당연히 떨어져 죽고 물에 빠져 죽게 됩니다.

 

오늘날도 이 말씀으로 거짓 선생들이 긍정적의 힘과 사고,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헛된 욕망에 빠지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거짓 선생들의 말에 넘어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마음에도 탐심이 있었기 때문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잘 속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 사람 속에 욕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능력 받아서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중심으로 생각하는 신앙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본문의 앞뒤와 같은 맥락인지 보셔야 합니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배경을 알아야 속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에 세운 교회가 유럽의 처음 교회인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이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투옥되게 됩니다. 이러한 바울을 보고서 일부 성도들이 생각하기를 바울이 사도로서 주의 종인데 축복을 받지 않고 왜 감옥에 갇히는 거야?”라고 하면서 교회에 자기들만의 왜곡된 신앙으로 분란을 일으켰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후원을 끊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와 같이 교회를 바라보면서 과연 제대로 복음이 전파되면 교회가 부흥성장하고 목사님도 어려움이 없어야 하는데 날마다 주변으로부터 욱여쌈을 당하는 것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뭔가 이 교회가 문제가 많이 있는 게 분명해!" 하면서 주변에서 서성거리면서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를 꺼려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본인이 스스로 잘못된 맘모니즘과 황금만능주의 신앙에 빠져서 교회가 연약하다는 것 때문에 멸시하는 것은 아닙니까? 교회란 성도들을 말합니다. 하나교회 성도들이 보잘 것 없어 보이십니까?

 

바울시대에도 지금도 동일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현장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제대로 알게 되면 어려움에 처한 바울을 돕듯이 하나교회가 어려움에 처할 때 도움의 손길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연보입니다. 헌금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연약한 가운데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된 바울은 오히려 기뻐한다고 합니다. 감옥이라는 상황은 환경적인 욱여쌈입니다,

 

바울은 연약한 가운데서도 왜 기뻐하는가요?

10> 나를 생각하던 것-다시 싹이 남이니(빌립보 성도들의 물질 후원)

크게 기뻐함은 바울의 마음이 온통 기쁨으로 가득 차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 기쁨이 어떤 기쁨일까요? 주안에서- 세속적인 기쁨은 아닙니다.

 

바울이 이렇게 크게 기뻐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다시 생각하는 마음이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성도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바울에게 재정지원을 하다가 중단되었는데,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연보헌금이 다시 조달된 것입니다.

이렇게 기뻐한 이유가 단순히 도움을 받았기 때문일까요? 내가 궁핍함으로 도움을 받아서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받았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에 참여한 것으로 기뻐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어려움도 있는 것이구나!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는 복음의 내용을 알았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도 목회자들을 먹여 살리는 것보다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에 관심을 갖는다면 저는 가장 기뻐할 것입니다.

며칠 전에 추석이 왔어도 아무도 찾아주지 않고 목회사역으로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 없을 때는 때로는 저도 인간인지라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십자가 복음을 전할 목회자로 부르셨다는 그 사실 한 가지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 중에 왜 우리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지 않느냐고 실망하는 것보다 제대로 복음을 알고 온 가족들이 복음으로 생명을 나누며 가족끼리 교제하면서 모여서 예배하고 감사한다면 그것으로 저는 기뻐할 것입니다.

 

왜 가족들이 복음으로 하나가 되지 못합니까? 하나님께 문제가 있습니까?

혹시 라고 하는 욕망덩어리가 바라보는 교회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할 만한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교회가 아닙니까? 사실 그런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제대로 복음을 알면 이러한 맘몬이라는 거대한 신에서 벗어나 약하게 보이는 가족이 있는 교회로 모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을 바울은 3가지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11> 자족함을 배웠다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내가 처해있는 상황이 무엇이든지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2:3>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받은 고난은 너무나 엄청납니다. 그런데 그런 고난 중에서 배운 것은 자족이라는 것입니다. 세상개념으로 자족이라는 말은 자기 컨트롤입니다. 내가 스스로 자족하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족이라는 것이 내게 주시는 능력 안에서라고 말합니다(23편).

 

12>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입니다(삼상2:6-7).

모든 상황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풍부할 때만? 배부를 때만? 궁핍할 때에도 배고플 때에도 상황에 관계없이 말입니다.

 

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복음 전하는 일을 합니다. “능력주시는”-그리스도의 능력이 부어지는 것이 항상 지속

고후12:7-10> 약할 때도 그리스도 안에서 강함을 주시는 주님을 경험

고후4:8>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할 대도 싸이지 않았다고 고백

 

이러한 바울의 신앙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까요?

모든 자족의 능력의 근원이 주님과 생명의 관계에 있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능력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을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크게 기뻐하면서 자신의 약함에 대하여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에게 머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한다고 합니다.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자족을 배운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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