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함유된 삶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기록했다. 그의 편지들의 핵심적인 주제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의 개인 생활과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한 내용도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그리스도를 닮는 일이 신약의 가르침에서 중심이 아님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구원받았으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은 복음을 윤리적인 노력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복음대로 살라고는 강요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독특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사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이다. 복음은 성자 하나님 특유의 사역이다. 성자 하나님은 성육신하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역할은 그분의 부활로 입증된 역할이다.
그러나 아마 우리는 때로 이 복음의 메시지와 관련된 진리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진리 그 자체는 복음이 아니지만, 그 진리가 없으면 복음이 복음이 되지 못한다, 성육신과 삼위일체에서 얻는 통일성과 구별성의 관점으로 우리는 비록 하나님이 한분이시지만, 삼위일체의 세 위격들이 서로 바뀔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성부 하나님이 마리아의 태중에서 성육신하신 것이 아니며, 성령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자신의 복음은 아들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성부의 일도 아니며 성령의 일도 아닌 오직 성자 홀로 행하시는 독특한 사역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구별점은 삼위의 세 위격이 관여하는 방식이 독특하게 구별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부나 성령의 독특한 사역이 복음으로 여겨지거나 복음의 자리를 차지할 때, 종종 혼란이 일어난다. 예정이나 창조나 거듭남이나 성령세례에 대한 설교는 모두 복음과 연관이 있으며 복음의 역사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구원과 관련된 필수적인 메시지는 아니다.
성화는 지금 우리 안에서 율법에 대한 율법주의적 성취가 아니라 율법의 성취자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열매로서 자라나고 있는 종말이다. 구약의 예언들과 하나님의 약속들은 지금 우리 안에서 성취되고 있다. 종말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현재 자라고 있는 실재이다. 우리는 죽었기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땅에 속한 것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다. 우리는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의 대해서는 산 자로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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