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1장1-10절 빛 가운데 행합시다!
요한일서> 생명-사귐-예수님과 함께 누림
2절> 사도가 증거하는 것은 생명이며 이는 사도들에게 실재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기 전에 꼭 질문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복음은 나에게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예수님을 중거하기 이전에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나 자신에게도 복음이 전달되지 안했다면 어찌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는가? 그러면 다른 것을 전하게 된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보고들은 바를 전하다고 한다. 왜?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데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사귐과 교제는 사도가 전한 복음인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같은 생각으로 모이느냐가 관건이다.
얼마든지 복음과 상관없이 흥왕하게 모이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없이 인간들끼리의 연합인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만남과 교제인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 이단과 사이비들도 집단으로 많이 뭉치고 모여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서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누는 관계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전하고 나누는 것을 사귐이라고 한다.
사귐의 필수적인 것은?
사도가 전해준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사귐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래야 서로의 막힌 담을 헐고 화평(엡2:13-14)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피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사귐은 그리스도와 함께 함으로 가능하다. 예수 안에서 만나는 하나가 된 관계이기 때문이다.
요약하건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은 결국 사귐이 있게 하려는 것이다.
요일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함이라
내안에 거하라 내 사랑 안에 거하라
요일1:5> 하나님은 빛이시라
내가 빛이 아니라 빛에 속한 자가 된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에 대하여 무감각한 것은 예수님이 피를 흘릴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죄에서(from) 은혜를 보지 않고 무작정 십자가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죄를 가볍게 여기며 값싼 은혜를 남발하기 때문이다.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빛 가운데 행하면?
①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다.
②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가 빛 가운데 행하는 자이다.
엡5:8> “주안에서 빛”이라
내가 빛이 아니라 빛에 속한 자가 되었다.
빛 가운데 행하면서도 죄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죄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면서도 정작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자로 거룩한 자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깨끗함을 말하는 것이다. 용서받은 것이다. 예수님의 피가 악함과 더러움을 가려줄 때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예수님의 피로 깨끗함을 입게 되는가?
빛 가운데 계신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악함과 부끄러움을 발견하고 죄를 고백하는 사람이다.
죄에 대하여 인식과 고백이 이루어질 때 빛으로 인해서 자기의 어둠이 드러나고 그것으로 악함을 발견하고 고백하는 자이다,
성도는 이로써 가리움을 받고 거룩하다 칭함을 얻게 된다.
벧전2:9> 빛 가운데로 인도한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자이다.
● 어둠가운데 행하면?
① “죄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거짓말이고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요일2:22>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이다. 아들을 부인하면 아버지가 없다.
②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처사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주의 말씀이 그들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 결론
빛이 어둠에 비추었을 때, 어둠이 보이는 반응이 2가지이다.
① 빛을 깨닫지 못하고 밀쳐내는 것이다.(불신자)
자신은 죄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고 어둠속에서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간다.
② 빛으로 인해 자신의 어둠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자백한다.(성도)
성도는 여전히 십자가의 은혜가 날마다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자이다. 그래서 십자가만을 자랑한다.(벧전2:9)
어둠 가운데 있다면?
자기 자신을 높이고
빛 가운데 있다면?
예수님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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