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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수 2021-02-11 추천 0 댓글 0 조회 929

신앙으로 생활하십니까?

 

우리 하나교회의 목표와 방향이

말씀으로 시작해서 신앙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뭐냐?

어린 양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그럼 찬미가 되려면 먼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죄 사함 받은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용서 받은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론이 아니고 실제여야 합니다. 

 

알다시피 은혜란 내가 만들고 얻어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겁니다.

마치 다메섹에 예수님이 사울을 찾아가서 용서하시고 긍휼을 입혀서 율법 아래서 빼내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가운데서 빼내주신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받은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은혜와 용서와 긍휼을 입은 성도는 자기 삶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을 토하여 내게 됩니다.

이걸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 한다고 합니다.

 

영광이란? 받은 것을 토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용서를 베풉니다.

긍휼을 입혀 줍니다.

자비를 베풉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고 용서를 입고 긍휼을 입은 성도는

그것들이 삶 속에서 하나 둘씩 뱉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나와지게 하세요.

이건 마치 참 감람나무의 진액을 가지가 받아서 뿜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각양의 은사들을 주어서 토하여 내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용서를 받고 긍휼을 입은 성도는 반드시 그 속에 있는 것을 토하여 내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일컬어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한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원수들을 용서 할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감옥에서도 찬송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 받은 것도 감사한데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사용당하고 있음에 감사하니 아픔 속에서도 찬송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찬미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기리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주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 받은 것을 알 때 나타납니다.

 

우리가 뱉어내는 용서는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의 열매입니다.

빛이신 주님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광인 겁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이 영광을 세세토록 찬미합니다.

누가 하느냐 하면 큰 환란에서 나온 자들이 해요(7:9-17)

 

천국에 찬송이 울려 퍼지지요.

누가 찬송을 합니까?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긴 자들이 합니다. 

어린 양의 피로 옷을 씻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 피가 너무도 귀하기 때문에 면류관을 어린 양에게 벗어 던지면서 찬미하는 것입니다

? 면류관을 어린 양에게 벗어 던집니까? 

 

이는 이 면류관은 자기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이 자기 안에서 모든 것을 하였기 때문에 내가 쓸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이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의 피로 용서받고 구원 얻은 자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이 세상 속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자기 안에 천국이 임한 성도는 이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께 받은 용서가 너무도 귀하기 때문에 남을 이해하고 보듬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울어주고 합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도 귀하기 때문에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게 됩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도 귀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깁니다.

이 일을 하게 하시려고 주님이 우리 안에 와 계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날마다 자기가 부인되어지는 아픔 속에서 일어납니다.

내가 비워질 때 이러한 것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날마다 우리를 간섭하시면 우리 몸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아픔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린양에게 찬미하는 천국 백성들을 일컬어 눈물 골짜기로 통행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천국은 눈물 가운데서 맛봅니다.

내가 죽은 그 자리에 남이 살아나고!

내가 종이 되어 섬긴 그 자리에 그리스도의 몸에 지체들이 섬김을 받습니다. 

 

? 눈물 골짜기로 통행한다고 합니까?

이는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만큼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 고난 입니까?

자기를 부인하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기 때문에 고난인 겁니다.

한 마디로 나를 위하여 살지 않고 예수를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고난인 겁니다.

주께서 나를 장악하고 나를 다스릴 때마다 눈물이 뚝 뚝 떨어집니다. 

 

신앙생활이란? 날마다 자기가 부인되는 것입니다.

내 의가 부인되고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채우는 것입니다.

내 생명은 부인되고 예수의 생명으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자기가 죽고 예수로 산 자들이 사는 곳입니다. 

 

12제자들도 예수로 살다가 천국에 갔습니다.

바울도 예수로 살다가 갔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예수로 살다가 갔습니다.

구약에 성도들도 예수로 살다가 갔습니다.

지금도 이런 예수로 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삶으로 어린 양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미는 그냥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던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예수 때문에 버림당하고 고난당한 사람들이 한단 말입니다.

 

십자가 도를 주술처럼 외우는 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도로 사는 성도라야 찬미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국에서 울려 퍼지는 어린 양의 찬미는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 당한 성도들이 부르는 것이란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바울의 고백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빚진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남들이 받지 못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긍휼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준 것을 회수해 가십니다.

하나 둘 찾아 가십니다.

 

용서 받았으니 용서하라고 합니다.

은혜 받았으니 은혜를 토하여 내라고 합니다.

긍휼을 입었으니 긍휼을 베풀라고 합니다.

사랑 받았으니 사랑하라고 합니다.

주께서 우리 안에서 그렇게 간섭하십니다. 

 

주께서 간섭하실 때마다 우리 인생은 아파집니다.

이럴 때 마다 성도의 몸에선 주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흔적들이 터져 나옵니다.

예수의 흔적들이 한 둘 새겨집니다.

이 흔적이 바로 찬송으로 나타납니다. 

 

어린 양을 찬미하는 것은 아무나에게 허락이 된 것이 아니에요.

오직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허락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것으로 선택을 입은 성도만이 찬미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찬미는 누가 하는가 하면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서 버림당하고 죽임 당한 사람들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용서 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기계적인 용서만 해요.

기계적인 용서 속에는 사랑이 없어요.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어요.

은혜가 묻어 나오지 않아요.

긍휼이 없어요. 

 

그러나 자기가 진짜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고 용서받은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주께 받은 용서를 토해내게 됩니다.

이는 그 속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있고, 은혜가 있고, 용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뱉어내는 것은 주께 받은 것이지 자기 것이 아니에요.

 

그러므로 용서 받은 성도에게선 용서가 나오고 용서를 받아 본 적이 없는 교인에게선 정죄와 심판이 나오는 것입니다. 

 

뱉어지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열매에요.

패악이 나오고 강포가 나오고 무례함이 나오면 그 속에 마귀가 있고!

긍휼이 나오고 자비가 나오고 용서가 나오면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신 겁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뱉어내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쌓은 선에서 선이 나오고 쌓은 악에서 악이 나온다고 했어요. 

 

예수님께서 죄인의 몸으로 오신 것은 죄인의 아픔을 체휼키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죄인의 아픔을 몸소 다 겪으셨기 때문에 죄인의 구원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보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지 않고 구원자가 되셨으면 기계적인 구원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이 없이 구원주가 되셨으면 죄인의 아픔을 모르기 때문에 진심으로 우리를 위한 대언자가 될 수가 없어요.

 

죄인을 위한 대언자가 되려면 죄인의 아픔을 몸소 겪어 보아야 해요.

주님은 이 아픔을 알기 위해서 육체로 오셨고 죽기까지 복종을 하신 겁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의 부대끼면서 날마다 자기가 그 말씀 앞에서 부서지고 깨어지고 부인당하여 가는 삶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들이 무가치함을 알고 다 내어 놓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 안다는 것조차도 자기 의라는 것을 깨닫고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내게서 나오는 것은 모두가 죄라는 것을 알고 상한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잘 잘못은 십자가 앞에서는 모두 쓰레기임을 알고 버리는 것입니다. 

제발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진짜 죄인 중에 괴수임을 뼈저리게 인식하세요.

그리하여 너도 나도 모두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용서 받음을 알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 아껴주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참아주고!

서로 감싸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 보다 나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예수님 피로써 용서 받은 죄인들이기 때문에 잘난 척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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