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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부활[균형인가 종속인가]
한광수 2021-04-13 추천 0 댓글 0 조회 934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17-18 개역개정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십자가와 부활

부활의 의미?

 

영화관은 영화관 내부나 관람하라고 스크린을 장착한 것이 아닙니다.

영화를 상영해야 할 곳입니다.

부활이 바로 영화관이라면 십자가 복음은 꼭 상영해야 될 영화내용입니다.

다른 영화는 다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능력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식을 찾으라 우리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상영하니)" (고전 1:17-23)

 

사람이란 본래,

각가지 정보를 보다 많이 획득해서 자신의 구원에 허점 없이 보완하기를 원합니다. 혹시 십자가를 강조하다가 부활을 강조를 못한 것으로 인해 자기 구원에 균형을 잃을까 염려하게 되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TV를 구입하면서 안테나를 구입 하지 않으면 TV를 사나 마나겠지요.

구비할 것은 확실히 구비하고, 챙길 것은 확실히 챙겨야 합니다.

 

성경을 볼 때에 '자기 구원용'으로 보면 부활을 강조하여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말씀이 옳게 느껴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편지 쓸 때,

"십자가 다음에 부활, 십자가가 다음에 부활,.이 둘은 놓치지 말 것....". 이런 식으로 적어간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를 말했고, 교회 안에서의 지체들 간의 사랑도 언급했고, 마지막 때의 악마의 시험도 말했고, 특히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의 아름다움도 빠지지 않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그 자체(열매, 사랑, 재림, 천국, 아름다움 등)를 증거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모든 은총이 (예를 들면 악마를 이기는 은총이) 오직 인간의 행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증거케 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인간 구원용(구원 받고자 하는 용도, 구원받고자하는 탐심을 충족시켜주는 용도)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택해서 구원받은 자로서의 역할이 주어집니다. 

 

창세전부터 계획해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이 언약을 통해서 전개되는데,

성도는 마지막 때에 '새언약의 증인'으로서 이 땅에 세워진 자입니다.   

그 새언약은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부활의 능력이 없이는 증거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 아니고 실제 상황이라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즉 소망이 소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지금 현존하는 세계가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부활의 의의 나라에 전개의 근거는 부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피는 새언약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부활 때나 승천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소리치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이 점을 놓치면 안됩니다.

 

고린도교회에서 성만찬을 했는데 그 핵심은 바로 '주께서 죽으시던 날 밤에 주께 받은 그 떡을 떼시는 성찬식을 되풀이 하면서 나를 기념하라'에 있습니다.

부활하셨기에 이런 명령을 하시는 겁니다.

 

예를 들면, 서울대학교 화장실의 사용 권한은 사실 공납금을 낸 서울대학 학생들에게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대학교 학생이 맨날 화장실(여기서는 부활 상징)만 들락날락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여기서는 십자가 상징)를 하기 위해 그 학교에 입학했지 화장실 사용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 십자가 만일까?

그것은 세상 지혜로 구원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오직 구원은 십자가의 능력(그냥 부활의 능력이 아니라)에 있음을 알리기 위함입니다(고전 1:17-18).

 

즉 우리 성도도 부활될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의 위력이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이어져야 될 이유가 하나님에게 있었던 것입니다(단순히 십자가와 부활 때문에 내가 살았다가 아니라).

 

그리고 논리상 이 점을 분별하면 뚜렷해집니다.

두 개의 개념이  체계를 이룰 때에는 어떤 식으로도 종속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기는 의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시간적으로 봐서 부활이 나중이니 일단 부활이 있고 난 뒤에는

십자가를 부활에서 흡수 통합 시키면 아무런 하자가 없이 보이지만

실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부활을 십자가에 종속되어 위계화 됩니다.

 

그 이유는 '주의 이름'으로 행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다 이루심"은 지상에서 오직 그 분만이 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확정 짓는 최종성이

부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있어 부활이란 십자가 완성의 그 결과로 주어진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면, 인간 중심으로 자기 구원용으로 생각해서 구원 정보제공용 또는 목회용으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미래에 획득할 것을 제공할 목적으로 복음을 전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저것 챙기는 좋은 상품으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그러려면 반드시 재림, 하나님의 나라, 영광 등을 빠트리면 안 되겠지요).

 

예수님의 무슨 희생 행위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인됨을 극명하게 드러났으며 , 그런 죄인이 어떻게 구원되었느냐를 증거하는 임무로 성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로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53:5)

 

사실 부활은 이 귀한 복음을 희석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십자가 복음을 확실히 해 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십자가(부활이 아니라)가 눈앞에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드냐?"

 

우리도 이렇게 증거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사람만이 부활의 영을 받아 부활의 세계에 속한 성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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