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복음1:4-14 개역개정
-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
요1:4-14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2020년 12월 20일
요1: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태초란 천지창조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창세기 1:1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똑같이 '태초'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1:1절의 태초와 창1:1절의 태초는 서로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요1:1절>의 태초는 세상의 창조 전의 말씀의 존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창1:1절>의 태초는 세상의 시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곧 천지 만물은 분명 시작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의해서 시작된 시작입니다.
요1:3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창조은 말씀에 의한 시작입니다.
♣4절>그 안에는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러면 만물을 지으신 목적(의도)가 무엇일까요?
말씀에 의해서 지음을 받았다면 분명 만물이 지어진 의도와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말씀 아래 존재해야 합니다. 이것이 질서입니다.
만물이 말씀에 의해 지음을 받았을 때 만물 안에는 생명이 있었습니다. 이 생명은 세상의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처음 상태였습니다. 생명이 있었기에 빛이 비취면 빛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지향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생명을 주신 분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 상태가 곧 질서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세상은 그러한 상태를 잃어버렸습니다. 생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곧 말씀 아래에서 벗어나 자기 기쁨을 위해서 선악과를 먹은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심판을 받아 멸망의 길에 선 것입니다.
창1: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완전 카오스의 상태입니다.
♣5절>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말씀 아래 존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존재하려고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결국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본문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어떤 상태에 있느냐”입니다. 생명이 있다면 빛이 비취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명을 잃어버리고 빛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되버렸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확인하고자 요한복음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단지 세상은 빛이 없는 어둠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끝나는 걸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오셔서 세상의 어두움을 드러내시는 것으로 끝나시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빛을 잃어버린 세상에 다시금 생명과 빛이 있는 나라를 창조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이 일을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나라가 세상 나라와 다른 점은 “생명이 있고 없고”의 문제 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생명이십니다. 빛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고서도 깨닫지 못하고 배척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것입니다. 말씀, 생명, 빛이 왔으되 밀쳐 내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 되신 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찾으시고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해서 눈이 뜨이게 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로 주어진 참된 복이며 선물입니다.
사도 요한 요한복음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20:21절>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래서 무엇보다도 우리가 무엇을 담고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선물인 생명입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담으려고 할 때는 바로 질서의 나라를 무질서의 나라로 바꿔 버리는 것입니다.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담으면 질서의 나라입니다.
♣9-11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①빛)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②창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③주인) 자기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세상의 주인은 말씀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주인이 세상을 방문했을 때 세상은 주인을 알아보고 영접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주인이 오되 알지 못하고 영접치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난자들이 있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입니다.
♣12-13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게 되는 것이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만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을 자는 이미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선택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증언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되어진 사람들을 대상하는 말씀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창조한 세계 속에서 보시기에 좋은 것만 남겨두시고 나머지는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보시기에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최후에 오직 생명만을 남기실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세상은 심판의 대상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에서 구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구할 것은 오직 생명밖에 없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피조물이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는 본래의 창조물입니다.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리스도의 오심은 바로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는 본래의 창조물을 새롭게 만드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생명 되신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생명이 주어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빛을 보고 깨닫는 빛의 자녀입니다. 빛의 자녀는 바로 주님을 영접하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특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새생명으로 살게된 특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삽시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