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이사야52:1-11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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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2.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4.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5.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
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8.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사52:1-11 “무슨 소식이기에 그리 기뻐합니까?” 2021년 3월 14일
사람들이 보통 하나님을 보고 싶으면 하늘을 쳐다보게 됩니다. 하지만 진짜 하나님은 하늘을 쳐다본다고 해서 나타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특수하게 다루고 계신 그 방식에 의해서 나타나십니다. 이 특수한 방식이 바로 언약이요 맹세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통하여 주 하나님을 날마다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럼 언약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갔다가 돌아올 것에 대한 예언
♣사52:1-2>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너는 티끌을 털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마치 우리들이 세상에 포로가 되었다가 주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과 더불어 하나님에게 많은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온과 예루살렘은 다시 영광스럽게 빛나는 가치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계시록 21장에 이 예루살렘성은 영광스럽게 빛납니다. 보석과 같다고 합니다.
계21;1-2>“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하늘에서 내려온다’ 예루살렘 성을 화사하고 영광스럽게 단장하는 장소가 이땅이 아닙니다. 하늘이라는 점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올 때부터 이미 완벽하게 영광스럽게 단장한 상태가 됩니다. 이 땅에서 새삼스럽게 손 댈 필요조차 없는 그런 신분이 된 것입니다.
그동안 예루살렘성이 황폐하고 더러워진 것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자기들의 방식으로 예루살렘을 꾸몄기 때문입니다.
구약 유대 나라 사람들은 그림자인 이 예루살렘을 영적인 도성으로 만들어보고자 나름대로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징벌 밖에 없었습니다. 성은 파괴되고 수모와 수치 속에 놓였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기 방식으로 자기가 원하는 영광을 이루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작업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온갖 더러운 것과 부정한 것이 우상적인 요소의 혼합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을 도리어 더러운 우상의 도성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하나님이 거처하시는 예루살렘 성을 소유하고 있다할지라도 그 관리와 유지에 있어서 자신을 과시하고 자신만을 사랑하고 자기를 자랑하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성과 그 백성들을 혹독하게 징벌하십니다.
하지만 모든 말씀은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방향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자기만을 사랑하는 성도를 만들어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능력으로 성도에게 손을 대십니다. 말씀으로 귀를 만들고, 말씀으로 손도 만들고, 말씀으로 입도 만들고 몸도 만들어 내십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그리스도 몸이요 새 예루살렘성입니다.
고전16:22>“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 성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려면 먼저 땅에 있는 예루살렘성이 일단 하늘로 올라가서 거기서 영광스럽게 단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슨 수로 지상의 예루살렘성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까요?
이 점에 관심을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그림자(혈통적으로)를 실천에 옮기면 하늘나라 실체로 변화하리라 기대했던 사람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라고 예수님에게 물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갈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자는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엡4:10).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요3:6)” 육이 아무리 애써도 영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 구약에 나오는 내용들은 신약의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그림자
시온산, 즉 거룩한 성 예루살렘성도 그 그림자 일부에 해당됩니다.
구약의 역사들은 모두 ‘그림자’입니다. 마치 하늘에 구름 이 이동하게 되면 그림자가 이 땅을 빠르게 덮으면서 지나가게 됩니다. 그 그림자를 쫓아가는 것은 곧 실체인 구름을 쫓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그림자들이 어디로 향하여 모일까요?
모든 구약의 그림자는 예수님에게 모여져 십자가 안에서 영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림자를 모아서 영의 세계에 진입시키는 작업은 인간이 할 수 없습니다.
그림자가 모여서 실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실체와 그림자가 만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자를 따라가야 하는 겁니다.
요6:62-63>“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거듭난 생명인 구원받은 백성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 몸이 구약의 모든 그림자를 남기게 한 실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값없이 애굽 나라에 팔리게 했고, 돈없이 그 애굽나라에서 도로 풀리게 하셨고 앗수르에서 속량하신다고 합니다.
♣사5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하나님은 왜 속량의 일을 하신 겁니까? 사랑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기 백성을 다루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이 ‘값없는 속량’이라는 용어로 등장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랑을 알게 되면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 근심은 홀로 다 지고 가는 삶을 살다가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도는 순간이 올 수 있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경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불행하거나 겁나지 않게 됩니다. 사랑이란 누구를 못내 그리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 때문에 “살맛이 나고” 그분 만나는 소망 때문에 “앞날이 즐거워집니다.
사랑 앞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을 자신에게 놓아줍니다. 그 전에 율법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정죄당하고 시달려야 했습니다. 자기 인생을 본인들이 관리한다는 것처럼 짐이 되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셔서 짐을 풀어 주시고 사랑의 포로가 되게 하십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사랑포로가 되는 일이 기쁨의 원천입니다.
“사랑하고 보고 싶은 분이 생겼다!” 그 소식이 바로 복음, 기쁜 소식입니다. 그 소식을 듣는 자마다 생기를 찾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 어렵고 힘든 복음 전파를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만나고 싶은 사랑하는 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너무 보고 싶어 하루 빨리 자신의 육체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예수님 곁에 영원히 있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52:4-5>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스르에 공연히 압박당했고, 까닭없이 잡혔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본인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벌리시는 일은 이처럼 일방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다루어가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법입니다.
● 그러면 왜 구원하시려는 것일까요?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서 건져 구원하시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사52:5b> “그러므로 이제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
하나님께서 이제 무엇인가 하려고 하십니다. 주의 이름이 지금 더렵혀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로부터 자신의 더럽혀진 이름을 회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방의 압제에서 자기 백성을 건지는 것을 통해서 만방에 주님의 이름을 높이려는 것입니다.
사48:11>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보통 우리는 ‘나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 자신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공로와 주되심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영광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는 법이 없습니다.
♣사52: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 영원한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가? 기쁜 소식(내용=통치)
♣사52:7-10>“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백성 위로, 예루살렘 구속~~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좋은 소식(복음)을 전하려면 전할 내용(복음)을 주께로부터 받아야만 합니다. 복음을 받지도 않았는데 전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내용 없는 포장지를 전달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고 보내심을 받아야합니다(롬10:15).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시는 과정에서 위로와 구속이 발생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과 예언을 하셨고 그일을 성취하셔서 주의 이름이 드높여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구원받게 됩니다(주 이름↑→구원).
이제 주의 이름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를 부르자고 합니다.
✔왜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다!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여기서 기쁨이 어떻게 옵니까?
진정한 기쁨은 주님의 하신 일이 이루어져서 주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때 저절로 그 기쁨이 우리에게 전달되어 옵니다. 영원한 기쁨입니다.
여러분의 기쁨은 어떤 기쁨입니까?
우리의 기쁨은 내가 높아지고 내 소망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욕구가 이루어져서 입니까? 그것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일시적인 기쁨입니다. 진정한 기쁨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진 기쁨을 누리세요.
● 이러한 기쁨을 안고 어디로 향해 가야하며 무엇을 증언해야 할까요?
♣사52: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천국은 '나왔다'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왔다'는 것은 삭제해 버린 채 '간다'라는 것만 강조하고 있다면 구원의 의미가 뿌리째 흔들려 버립니다.
✔어디에서 떠나야(From where?) 하고 나와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떠나야 하고 나와야 할 자리는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있던 자리입니다. 바벨론은 세상 나라를 상징합니다. 세상으로 종으로 살고 매어 살았던 그 자리에서 떠나고 나와야 하는 것이 곧 이스라엘의 구원입니다.
✔그 자리에서 떠나서 어디로 가야(For where?) 합니까?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여호와의 기구란 하나님의 법궤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법궤를 메고 가야할 장소는 어디이겠습니까?
법궤가 있어야 할 장소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당연히 시온산을 향해 가야합니다. 그 성전은 그냥 가면 안됩니다. 여호와의 법궤를 메고 가야 합니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고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시온산으로 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왜 여호와의 기구를 메고 가야만 합니까? 기쁨을 안고 어디로 가야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못해서 죽어야 할 그들이 어린양의 피로 인해서 죄를 면제받고 깨끗한 자로서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그곳으로 예수님의 피를 메고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시온산을 향해 가고 있는 성도들이 항상 관심 두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메고 있는 여호와의 기구인 법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근거임을 증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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