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가복음14:32-4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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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막14:32-42 겟세마네 기도 2021년 3월 21일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25절)을 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가십니다.
예루살렘과 더 가까워진 곳입니다. 며칠 후면 십자가를 직접 맞이해야 합니다.
가시면서 십자가가 가까워질수록 한 번씩 가슴 아프게 제자들 속을 쑤십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27절)”
“엥~?? 무슨 말씀을 그리하세요? 예수님! 우리가 누군데??”
제자들은 육신의 힘을 믿고 큰 소리 쳤습니다. 호언장담합니다.
그러나 잠시 후 본문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 떨어지듯이 기도하시지만 한쪽에서 제자들은 뭘 하고 있는지 아세요?? 참 내~~ ㅠ
♣32절> 감람산의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예수님과 열한 제자들이 갑니다. 겟세마네는 ‘기름 짜는 틀(틀+올리브 열매)’이라는 뜻입니다. 감람나무 곧 올리브 나무가 많은 산이기에 감람산이라고 합니다. 이런 곳에는 올리브기름을 짜는 곳에 있기 마련입니다. 올리브 생 열매를 압착기에 넣고 기름을 짜 냅니다. 감람산 겟세마네라는 지명조차 예수님께서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처절하게 “으깨어지듯”이 쥐어짜는 아픔의 기도를 미리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이르러서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으라고 하십니다. 앉아 있으라고 한 자들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뺀 여덞(8명)입니다.
주님은 평상시에도 이곳에 오셔서 습관처럼 기도하곤 하였습니다(눅22:39)
● 십자가의 길을 점점 가까이 향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나?
♣33~34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3명)을 데리고 가시면서 예수님께서 심히 놀라고 슬퍼하시면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오시면서 제자들에게 계속하여 자신의 죽으심과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셔도 제자들은 못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왜 죽음 앞에서 놀라고 슬퍼하시며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십니까? 무엇이 예수님을 이토록 고통과 번민으로 이끌게 하였을까요?
그의 번민과 놀람, 그리고 슬픔은 그 역시 시편 저자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가졌던 단절감을 경험(예언 성취)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죄인인 우리들이 받아야 할“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가”를 보여줍니다.
[사역 시작 즈음에는 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죄 가운데 있는 백성을 위한 메시아의 길을 걸어갈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처럼,
사역 말미에 이르러서는 “많은 사람을 대신하는(10:45) 혹은 ”많은 사람을 위한(14:24) 죽음을 앞두고 그들이 겪어야 하는 영적 유기 상태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이스라엘의 메시아 예수님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이 고통과 번민을 시편 42:5절과 42:11절 및 43:4절을 인용하여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구약에서 예수님의 영 곧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시편의 기자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식을 미리 말한 것입니다. 물론 그 시편 기자도 여호와의 전을 사모하지만 원수들의 압제로 인하여 가까이 가지 못함을 탄식하면서 시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죽은 자들은 예수님의 이 아픔과 고통을 아무도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홀로 피 땀 흘리며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은 누워 잘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흔들림 없이 그 잔을 마셔야 하실 분이 심히 놀라고 슬퍼하면서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는 고통을 아는 분입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 됨의 관계에서 끊어지는 것을 이미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자들은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내 아버지라고 부르시며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릅니다.
● 예수님의 기도
[1] 처음에는 탈출구 ①이때가 지나가게
②이잔(육적 죄짐/영적 단절)을 옮기시옵소서
♣35~36a절>“봉독” 예수님은 세 명의 제자들과 또 조금 거리를 두시고
땅에 엎드려(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십니다.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시기를 구합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잔을 내게서 옮겨주세요”
이전에 이런 일이 있었지요. 예수님께서 마실 잔과 받을 세례가 십자가의 죽음인데 이것을 제자들이 모르고 마시겠다고 한 적이 있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마실 잔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시고 제자들을 이끌어 예루살렘까지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시면서 아버지는 모든 것이 가능하호니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시면 안되느냐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나약한 모습은 또 뭡니까? (숨어계시는 하나님!, 세상 영웅×)
사53:2> 연한 순,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고운모양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유일하게 아는 아들입니다. 그래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모든 것이 가능한 분임을 믿습니다. 아버지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잔이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체적으로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일 뿐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그 영적인 관계가 끊어지는 고통입니다. 이 고통은 유일하게 예수님만 아는 고통입니다.
[2] 나중에는 진입구 ③아버지의 원대로
♣36b절>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러나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이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는 통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그것도 예수님 가장 가까이 있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조차 예수님의 이 고민과 고통에는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기도를 하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에게서 저주 받아 끊어지는 그 고통을 오롯이 홀로 감당하시는 것입니다. 그 길만이 죄인을 구원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참된 아버지를 잃어버린 자들에게 참된 아버지를 찾아주는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를 안다고 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말하는 아버지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버지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죽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이 기도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참 아들인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택하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길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그렇게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아빠 아버지로 부르신 그 하나님을 우리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됩니다.
● 제자들의 모습(자고 - 또 자고 - 또 잤더라)
♣37~38절> 예수님 홀로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①오셔서 보시니 제자들이 자고 있습니다. 그 중에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이라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큰소리 쳤던 자가 아닙니까? 제자들이 다 말로는 의기투합했지만 예수님의 고통의 현장에 한 시간도 깨어있지 못한 것입니다. 제자들을 깨어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합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도 육신이 약하다”고 하시면서 다시 기도하러 가십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아요.
♣40절>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②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1)처음에는 “깨어 있으라”고 하였는데 잤습니다.
(2)두 번째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그런데 또 잤습니다.
예수님께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이 자슥들~ 그렇게 깨어 기도하라고 했건만! 가만두지 않겠다?? 했나요?
이들을 깨워 놓고 다시 예수님은 기도하시고
♣41절> ③세 번째 오셔서 제자들을 봅니다. 또 여전히 자고 있습니다.
완존~ “잠충이들인가”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다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3번이 중요합니다(바울도 3번 간구, 완성의 수, 삼시 세 판!!!)
그 때란 예수님이 죄인의 손에 팔린다고 하십니다.
♣42절> 일어나 함께 가자.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자는 제자들을 함께 가자고 하십니까?
이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향하여 가자는 겁니다.
여기서 “함께”가 중요합니다.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함께 갑니까? 못 갑니다. 큰 소리는 칠지언정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왜 함께 가자고 하실까요?
아무도 인간의 힘으로는 예수님과 함께 갈 자가 없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칼을 들고 잠시 설치지만 결국은 다 도망갑니다.
“걸음아 나 살려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리라”말씀성취가 이루어집니다.
<적용>
○ 우리의 겟세마네는 어디입니까?
○ 그 자리에서 어떤 기도를 하고 있나요?
○ 주님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하여 기도함으로써 주님을 더욱 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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