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복음21:15-1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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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요21: 15-17 “그사랑이 내사랑을 삼켰어요” 2021년 5월 9일
어버이 사랑과 은혜에 감사!
왜 우리에게 부모님을 주셨을까요?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과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경험토록하기 위함입니다.
롬1:19-20>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보이지 아나하는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자녀들아 주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
● 오늘말씀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셔서 하신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고 있습니다.
① 첫 번째 나타남은 다른 제자들은 다 있고 도마만 없을 때고
② 두 번째 나타나심은 도마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었을 때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두 번 만났어도 주님을 믿지 못하고 허탈감에 빠져 엣 생활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③갈릴리로 낙향한 그 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요21: 2-3>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2과 또 다른 제자2 -- 7명
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었는데도 믿지 못하고 낙향한 것일까요?
요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보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하시니라
부활의 주님은 보았어도//보지 못하고 믿게 하시는 성령이 오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갈릴리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본격적으로 그동안 주님이 가르쳐주신 진정한 사역의 의미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동안 제자들이 따랐던 잘못된 목적을 제대로 수정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따르고 믿고 자기가 수가 틀리면 예수님을 떠나버리는 자기 신앙 말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자기로부터 출발해서 믿는다고 덤볐다가 힘드니까 예수를 부인하고 떠나버린 것과 같습니다. 생업이 우선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이런 신앙은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입니다. 거짓신앙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러했습니다.
● 호언장담 베드로
마26:31-35> 호언장담! 베드로의 모습을 보십시오. 감람산에서
31-32절> 오늘밤에 너희가 나를 버린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절> 베드로 --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절> 예수님 --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3번 나를 부인하리라
35절> 베드로와 도든 제자들 --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 주님은 이들을 갈릴리에서 다 내려놓게(십자가로 죽이시고) 하시고 다시 십자가로 시작을 하시는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디베랴)에서 제자들이 배에 올라 열심히 고기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결과는 어떠합니까?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3b)”--허탈감과 공허(예수님이 없으면 공곽, 맹탕!)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묻습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고기 많이 잡혀??(5절) “없어요“
없음을 확인하고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 잡으라고 하시니 물고기가 심히 많이 잡혀서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이때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이 “주님이시다!” 하니 베드로가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립니다(한 성깔 하는 모습). 다른 제자들이 작음 배를 타고 물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로 올라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숯불이 있고 위에 생선과 떡이 있습니다.
♣요21:12-13> 와서 조반을 먹으라~ 떡과 생선을 주시니 그들이 먹습니다.
꼭 우리의 어머니와 같은 모습입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으로 생명의 떡을 주십니다.
①고기를 잡히게 하시고 ② 아침 조반을 먹이고 난후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15절> 요한의 아들 시몬아~ 아가페? 필레오//내 어린 양을 먹이라
16절> 요한의 아들 시몬아~ 아가페? 필레오//내 양을 치라
17절> 요한의 아들 시몬아~ 필레오? 필레오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필레오로 사랑하는 아십니다”//내 양을 먹이라
● 여기서 주님의 사랑과 사명의 관계를 가르쳐주십니다.
스스로 고기를 잡을 수 없다면 스스로 양도 먹일 수 없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예수님에 의해 잡혔다고 한다면 양도 예수님에 의해서만 먹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고 치라고 한다면
“아닌데요. 우리는 예수님의 양을 먹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먹이게 해주셔야만 됩니다.”
이때 주님은 아가페의 사랑을 베드로에게 부어주셔서 그 사랑으로 양을 먹이고 살립니다.
왜 이렇게 하실까요? 그것은 앞으로 비록 베드로가 양을 먹이고 치는 일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건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내가 과연 내 힘으로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내 힘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은 “나는 안 된다”는 탄식의 바탕에서 일어날 때, “하나님의 은혜만”이 오롯이 남게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베드로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자임을 폭로합니다.
자기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해야 주님을 부인하고 배반할 뿐입니다. 심지어 주님을 저주합니다. 호언장담한 내 사랑은 가짜였던 것입니다.
● 3번 부인하는 보습 현장
마26:69-75> 세 번 부인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① 69-70>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너도 갈리리 사람 에수와 함께 있었도다”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② 71-72> 다른 여종이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 나는 그 사람을 알지못하노라”
③ 73-74> 곁에 섰던 사람들--“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저주하며 맹세하여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니라
♪♬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내주 예수 여전히 날 부르사 그 참되신 사랑을 베푸시나니~
[잡고 - 먹이고] // [그물로 건져내어 - 떡과 생선 먹여 살리고]
먼저, 예수님께서 153마리를 잡게 하십니다(6절) 그리고 나서 떡과 생선을 먹이십니다. 말하자면 고기를 잡히게 하십니다. 그리고 먹이십니다.
나는 내 능력으로 어부가 될 수 없고 그래서 잡지 못한 고기와 떡을 가지고 양을 먹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그물은 찢어진 그물입니다. 다 놓혀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놓치지 않는 사랑의 그물로 내 그물을 대신해주세요~
나는 내 힘으로 주님을 쫒으려다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내 사랑(필레오)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나섰지만 위기를 만나보니 주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거짓 사랑(필레오)을 삭제(못 박아)해주시고 주님의 참사랑(아가페)으로 덮어주소서!
베드로의 거짓 사랑이 비워지고(비움)과 예수님의 참 사랑을 채워(채움)주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거짓 믿음과 거짓 사랑을 십자가로 죽여주시고 참사랑으로 살려주십니다. 바꾸어주시는 현장은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이 사랑을 받은 자만이 주님의 양을 먹이고 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아닌 가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사랑은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받은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하기 위해서는 이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적용시키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어집니다(롬5:5).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도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십시오. 그렇지 않고 육적으로 거짓 사랑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자녀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엡6:1> 주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하십니다. 주 밖에서 하는 거짓사랑으로 묶여있는 상태를 우상이라고 합니다(롬1:25).
● 고기를 잡는 것(구원) = 먹이시는 것(생명).
① 구원이 네가 스스로 사랑하는 가짜 사랑으로 구원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헛수고라는 것이지요.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되 열심히 잡아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잡을 수 있을 까요? 주님이 함께하셔서 그물(구원하려는)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밤새 잡아도 나는 안 되고 주님은 되는 것입니다.
② 구원시켜주시는 분이 또한 먹여주실 것을 알고 목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이 있을 때 양을 먹이고 치는 것임
<결론 및 적용>
요일4:18-19>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게 됨은 그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두려워할까요? 내가 먼저 주를 사랑하면 “내”가 있어요. 내가 남아요. 이러면 두려움이 찾아오고 형벌이 옵니다. 내가 잘 했으면 벌을 안 받는 건데 못해서 벌을 받는거야!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법에 메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주신 사랑으로 주를 사랑하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서로 사랑입니다(요13:34, 새계명)
벧전4:8> 마지막을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하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허다한 죄가 덮어진 것을 아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자신의 죄가 폭로당하는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가 입합니다. 마치 법궤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과 같습니다. 법궤뚜껑을 ‘시은좌’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법궤 속에는 3가지 불순종의 증거물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증거물은 이스라엘의 모습이며 우리 죄인들의 모습이며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그 위에 흠 없는 어린양의 피를 뿌리면 은혜가 임합니다. 용서와 은혜의 자리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이러한 은혜로 살고 있음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용서와 은혜와 긍휼만이 우리가 있어야할 자리인 것입니다. 그 자리가 주님이 사랑으로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형제의 허물을 덮어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호언장담하며 두팔 걷어 부치고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큰 소리쳤습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입니다. 십자가를 경험하기 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베드로를 십자가를 경험하도록 원래의 자리에 데려다 놓습니다. 갈릴리입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무가치함을 경험하게하시고 예수님보다 더 사랑한 것이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폭로시켜줍니다. 주를 부인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입니다.
배은망덕한 베드로! 허물 많은 베드로! 배반자를 찾아오셔서 참된 사랑을 가르쳐주시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실 때,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만 양을 먹이고 치라고 하십니다.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부모님을 사랑하고 자식들을 사랑할 때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부모를 주신 것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주님께 감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복이 됩니다.
고전16:22> 이 사랑만으로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 밖의 것은 가짜이므로 저주를 받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고 부모를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합시다.
♣요21:18> 젊어서(십자가 전)에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십자가 사건 이후) 주님이 네게 띠를 띠우고 원하지 않은 곳으로 데려가리라 // 십자가 전에는 네 맘대로 네 욕심대로 믿고 사랑하였지만 그것은 다 거짓이고 십자가를 경험하여 성령이 오면 그때부터 너는 자신을 날마다 부인하고 주 뜻대로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참사랑이신 그 사랑이 가짜사랑인 내사랑을 삼켰을 때
주님이 우리를 주관하시고 양들을 먹이시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사랑이야” 하지 않고 “사랑은 이렇게 나타난다”고 가르칩니다. 받은 사랑이 있기에 사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쁘게 사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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