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1. 성경의 내용은 무엇인가?
성경을 펼치면 평소에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호강: 호화롭고 편안한 삶을 누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별 흥미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만 나열되어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성경에는 어떤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나?
구약에서는 제사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창세기에서 가인과 아벨이 드리는 제사를 시작으로 홍수 심판 후 노아가 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을 취하여 번제를 드렸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자기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 했는데 하나님의 만류로 아들 대신 수풀에 걸린 수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는 이야기 등등.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자기 백성을 탈출시키려고 모세를 불러 세우시면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출3:12)” 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의지하고 그는 애굽 왕에게 나아가 담대하게 말한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출4:3).” 라고.
그러니까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이스라엘은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야 했던 것이다.
레위기는 전체 내용이 제사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제사장을 세우고, 성막을 짓고, 각종 절기와 그에 따른 제물의 종류, 제사 방법 등등을 열거하고 있다.
선지서에서도 성전이 솔로몬에 의해 세우지고, 이방인에 의해 부서지고, 다시 스룹바벨에 의해 성전이 세워지고 그런 이야기들이 계속 전개된다.
신약으로 넘어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몇 년 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결국은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시는데, 이런 예수님의 운명을 세례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1:29)”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신구약 모든 성경은 정결한 짐승의 죽음(죄 없는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으로 말미암아 자기 백성의 죄를 씻는 이야기가 맥을 이룬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또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이런 사실들은 외면한 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성경을 펼치고 교회에 나온다. 이런 모습은 비단 오늘 우리들에게 국한 된 이야기는 아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당시 유대인들 역시 자신의 꿈과 소망을 갖고 성경을 읽었고, 하나님을 찾았다. 그 단적인 예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포함한 구약의 모든 말씀을 읽고 외우고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영생 얻을) 욕심뿐이었다. 그런 관점으로 성경을 읽으니 성경에서 증거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볼 수 없었다.
성경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2. 왜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는가?
왜 구약에서는 짐승을 죽여 피를 뿌리는 제사를 드려야 하며,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피 흘려 죽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과연 이런 이야기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어떤 연관이 있단 말인가?
이 피 흘려 죽는 것이 우리의 최종적인 모습이기에 이 이야기는 내가 무시할 수 없고, 외면할 수도 없는 바로 나의 이야기다.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심판과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이며(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롬3:11), 죄인의 최후는 심판(사망)을 받기 때문이다(죄의 삯은 사망이라 - 롬6:23).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다(히9:22)고 하셨다. 이 말씀을 돌이키면, 피 흘림을 통해서만 죄 사함이 있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죄인에게 더없는 복음이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다.
그러면 아무 피나 흐르면 된다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피를 흘려야만 내 죄가 사함 받을 수 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요일1:7)’이라고 하셨다. 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 외에는 우리 죄를 씻을 수 없다. 따라서 죄인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는 소식 외에 다른 복음(기쁜 소식)은 없다.
3. 사람의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간구한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면 된다고 하고, 지은 죄의 분량만큼 선행을 하면 죄가 소멸된다고 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면 죄를 용서받는다고 하고 ---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약속을 하신 적이 없고, 오직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만 자기 백성의 허물과 죄를 사하실 뿐이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과 예수님이 만세전에 약속(언약)하신 바이며, 세상은 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펼쳐질 뿐 이 외에 다른 세상은 없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망하고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땀 흘리고 노력하지만 결코 그런 꿈대로 세상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보다 더 힘이 세고 강하신 하나님이 우리 계획은 다 허물고 오직 자기 뜻대로만 이끌어 가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무리 정성을 쏟아 바벨탑을 쌓아도 하나님은 단숨에 무너뜨리신다.
미련한 자가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다 무너진다. 오직 반석 위에 세운 집만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건축자들의 버린 돌’(사람들이 전혀 쓸모없다고 죽인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교회의 터전)이 되게 하셨다. 이 돌 위에 세우지 않으면 다 무너진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힌다(요15:13).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심고 가꾼 것은 하나님이 인정 안 하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 않으신다(시50:9-11). 하나님이 받으시는 온전한 제사는 오직 자기 아들이 십자가에서 드리는 제사뿐이다(요17:1-5). 다윗은 이 사실을 알고 이런 고백을 했다.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시51:16-17)”고.
4. 믿음은 무엇인가?
교회 다니는 사람을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예수 믿는 자들이다.
그러면 예수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으면 믿는 것인가? 아니면 삼위일체를 믿으면 예수 믿는 것인가?
사실 이 믿음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고후11:4)을 믿으면서도 신앙을 가진 것으로 착각한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 예수를 통해서 모든 것을 다 성취하심을 믿는 것이다. 즉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모든 것을 다 이루심(요19:30)을 믿는 것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다 이 사실을 믿는 것 아니냐고?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것을 믿고, 예수께 충성하면 복 받을 것을 믿고, 율법을 잘 순종하면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상 받을 것을 믿는다.
그러나 이런 자들이 정작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는 사실을 안 믿는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그것은 그들이 계속 자기 행위에 집착하고, 그 행위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확인된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3).”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할 육체가 없는데(롬3:20), 이들은 율법 준수로 의가 쌓인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 하고, 전도하고, 직분을 감당하고 등등 끝없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나열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예수 믿는 것이란 말인가?
예수를 믿으면 나를 믿지 않는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판단과 평가의 기준을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에서 출발한다. 이 십자가에서 벗어난 생각과 시각은 다 엉터리다.
죄를 이야기한다면 내가 거짓말 하고, 남의 것을 도적질하고, 음행하고 등등 율법을 놓고 죄를 운운하는 것은 십자가 중심의 죄관이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에 (내 행위의 잘 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이) 우리는 죄인인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사53:5)이기에 그렇다.
거룩(의)을 말해도, 인간의 착한 행실, 또는 회개해서 정결케 된 것 등으로 말하는데 이것은 다 엉터리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말미암아 씻음 받아 의가 된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마19:16)?’ 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선한 분은 하나님뿐이다.’ 이 말의 의미는 인간은 선할 수 없다는 말이고, 따라서 인간의 행위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생명을 얻었다(요6:56)’고 하셨다. 인간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행위(십자가 지심)로 말미암아 영생이 주어진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5. 믿음은 선물로만 주어진다.
과연 나는 믿는 자인가?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떻게 온 것인가? 열심히 기도해서, 아니면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고 공부해서, 그것도 아니면?
믿음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어떤 행위로 믿음을 생성시키지 못한다. 오직 성령께서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실 때에만 믿음이 주어진다. 이 말은 믿음이 나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사랑 때문에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6. 십자가를 중심으로
과거에는 율법을 기준으로 죄를 거론했다면 신약 시대에는 십자가를 기준으로 죄를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안식일을 어기면 사형, 남의 물건을 훔치면 5배로 변상.’ 이렇게 구약에는 죄의 경중이 있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그렇게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는다. 왜? 율법을 기준으로 죄를 묻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무조건 사망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 죄를 위한 죽음(사 53장)이기에 십자가 앞에서는 우리 모두 무조건 죽을 죄인인 것이다.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2:10)”라고 했다. 이 말씀에 따르면 금식하고, 구제하고, 십일조 하고, 사람들의 칭찬을 듣는 바리새인이나, 평생을 토색하고 갈취하며 산 세리(눅18:10-13)나 모두 0점(죽을 죄인)이다.
교회는 인간의 노력과 땀으로 세울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자기 피로 세운다(행20:28). 따라서 교회는 모든 사람을 십자가 앞에서 죽은 자로 간주하는 곳이다. 그래서 목사나 교인이다 가릴 것 없이 다 죽어 마땅한 자임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곳이다. 그 작업을 목사는 말씀을 선포하면서 하는데, 그 선포된 말씀을 통해서 전하는 목사도 죽어 마땅한 죄임임을 고백하고, 듣는 성도 역시 ‘죽어야 할 자가 바로 나’임을 늘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날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그분의 보혈을 감사함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십자가 피 앞에서는 나의 가진 모든 것이 배설물이 되는 것이다. 왜? 그런 것으로 내 더러운 죄를 씻을 수 없기에 그렇다.
이 ‘십자가의 진리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는 말씀을 기억하는가?
십자가는 죄인인 우리에게는 영원한 상처이며 또 영원한 용서의 샘이다. 왜? 죽으실 뿐 아니라 죽음에서 살아나셨기에 그렇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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