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원래 없던 자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없던 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그리곤 범죄하자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으셨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에게 내린 선고는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안식이라고 한다.
안식이란? 쉼을 말한다. 인간이 일평생 이마에 땀을 흘리며 수고와 슬픔 가운데 사는 것은 징벌이다. 아무리 성공한 인생이라 하여도 수고와 슬픔 가운데 땀 흘리며 일생을 살아간다. 수고와 슬픔으로 살아야 할 인생으로 태어남이 곧 징벌이다. 욥은 이 사실을 알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자가 더 복되다고 하였다. “있음”이 복(福)이 아니라 “없음”이 복(福)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흙에서 난 자를 흙으로 돌아가게 한 것은 저주라기보다 축복이다. 저주는 “있다”고 생각하면서부터 주어진다. 나는 없던 자였는데 “존재하고 있구나” 를 알면 “있음” 자체가 고마움이 된다. 하지만 난 원래부터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없음으로 되돌리면 원망하고 불평한다. 왜? 나를 없애느냐고 항변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죽음을 저주이고 슬픈 일이라고 생각하며 울고불고 한다.
성도는 난 없는 자이고 “예수 안에 있는 자”로서 살아간다. 그러니 내가 살아도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내가 산다고 믿는 것이다. 성도는 자기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생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인생은 실패가 없다. 이삭은 없었던 자였는데 약속 때문에 생겨났다. 그리곤 어린 나이에 약속을 위해서 모리아 산의 제물로 바쳐진다. 실제 이삭은 모리아 산에서 죽은 자이다. 이제 이삭이 사는 것은 여호와께서 준비한 “제물 안에서 사는 것”이다. 이삭을 약속의 자녀라고 하는 것은 약속을 위해 있다가도 없어져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도를 이삭처럼 다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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