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과 같은 성화주의 신앙에 주의하자
성화주의자들의 잘못은 기독교가 말하고 있는 성화를 ‘스스로 거룩해지는 것’으로 오해하는 데 있다. 즉 믿음이 있는 자로서 점점 나아져 가야 한다는 것이다. 믿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은 그러한 하나님의 일에 반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성화를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화는 한마디로 말해서 ‘신인협력’을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의롭게 하시고 자녀 되게 하셨으니 인간은 하나님의 일에 협력하여 점점 나아짐을 보여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곧 불교가 추구하는 ‘해탈’, 즉 자기 구원을 향한 욕망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부처는 생로병사에서 비롯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을 가르친 것이지, ‘나를 믿으면 너희를 삶의 괴로움에서 해방시켜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많은 불교 신도들도 자기 구원에 집착하여 부처를 신의 자리에 앉혀 놓고 부처의 힘을 입어 자기 구원을 이루어 보려는 욕망으로 부처 앞에 나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성화와 성불은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화’란 자아 성취라는 욕망의 산물일 뿐이다. 자신의 점점 나아짐에서 자아 성취를 맛보고자 하는 욕망이 ‘성화’라는 옷을 입고 위장하여 기독교 행세를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그 믿음으로 인해 변화되고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을 신자의 책임 또는 덕목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믿음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지 인간에게 어떤 힘이나 자질을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삶이란 내가 점차 나아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붙들고 있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거룩 또한 인간의 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그 분 안에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나를 붙드시는 분에 의해 되어진 상태이지 인간이 스스로 예수를 붙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이루어야 할 성화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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