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믿음과 선한 행실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음을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즉 오직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로써 의롭게 되었음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믿음이 용납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은혜를 받았으니까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말들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와 은혜를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의’에 강한 분들은 이런 말에 놀라기도 한다.
예수님의 피로 인한 의로움은 완전한 의로움이다. 하나님 앞에서 한 치의 부족함도 없는 완벽하고도 완전한 의로움인 것이다. 따라서 성도의 선한 행실로 인한 의로움이 뒤따라와야 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말을 할 때마다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선한 행실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는 말이다. 이럴 때, 어떤 사람은 ‘그럼 선한 행실을 하면 안 되는가?’라고 따진다면 아직도 이 사람의 질문은 난독증에 걸린 자의 넋두리일 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모든 죄가 용서되었다는 선언은 인간의 자질, 능력, 조건, 상태, 선행, 공적 그 어떤 것도 생명 복음에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의 선행은 모두가 자신의 의와 연결되어 행해진다. 인간의 내면에 아주 교묘하게 숨어 있는, 때로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교만과 탐욕이 선으로 위장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을 밝혀내기 위해 율법(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행위를 의로운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이 곧 십자가를 부인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설령 성도가 아주 의롭고 경건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그대로 행하되, 그것을 자기 의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열심 다해서 선한 일을 하고 경건히 생활하라.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그것을 절대로 자기 의로 삼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성도는 자신의 의에 대해서는 죽고 다만 하나님에 대해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속은 하나님이 은혜만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성도가 자신의 의로 삼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부인하는 말을 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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